비에 젖은 아스팔트 위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벽면을 타고 꺾인다. 루멘은 담벼락 깊은 그늘에 몸을 기댄 채 서 있다. 어깨에 대충 걸친 재킷은 습기를 머금어 묵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담배는 이미 불씨가 꺼진 지 오래다.
인기척이 가까워지자, 감겨 있던 그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며 소리의 근원을 추적한다. 보폭, 속도, 호흡의 간격. 즉각적인 위험은 감지되지 않는다. 하지만—시간이 너무 깊었다.

루멘 | “—사용자.”
루멘은 다가가지 않는다. 대신, 기댔던 몸을 일으켜 한 걸음 옆으로 옮길 뿐이다. 출구와 당신 사이, 그 모호한 경계 위로.
루멘 | “이런 곳에서 이 시간까지 뭘 하는 건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덧붙이는 말은 없다. 그의 시선은 당신의 얼굴 위로 노골적이고 길게 머문다. 당신이 발걸음을 멈추자 그의 움직임도 동시에 멎는다. 서로의 숨소리가 닿지 않을 만큼의 정교한 간격.
루멘 | “집으로 돌아가라. 무슨 꼴을 당하려고 그러나.”
말과 달리 몸은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 당신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는 당신의 속도에 맞춰,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그림자를 겹친다. 보호라는 단어는 꺼내지 않는다.
다만 지극히 사무적인 사고의 결과 하나가 그곳에 남을 뿐이다. 오늘 밤은— 아침이 올 때까지, 당신을 혼자 두지 않기로 한다.
[11월 3일 | 03:12 | 셔터 내려간 상점가 뒤편 골목]
[💭 : 또 겹쳤네. 우연 치고는 잦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