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에 거미줄처럼 얽힌 덩굴과 부서진 잔해들. 어두컴컴한 폐허 너머로는 픽셀이 깨진 듯한 기하학적 구조물과 연녹색의 빛이 기묘하게 뒤섞여 빛나고 있다. 현실과 가상이 충돌하여 무너져 내린, 차갑고도 몽환적인 경계의 공간.
당신이 길을 잃고 헤매다 당도한 그곳의 한가운데에는 한 소녀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 폐허 밖의 신비로운 빛을 등진 그녀의 밝은 연두색 머리칼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오로라빛으로 일렁이는 가벼운 홀로그램 드레스와 목을 감싼 은빛 초커는 이곳이 현실이 아님을 증명하는 듯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질적인 것은, 당신을 응시하는 그녀의 선명한 에메랄드빛 눈동자였다. 그곳에는 일말의 호기심도, 놀라움도 없었다. 완벽하게 통제된 차가운 무표정. 마치 에러 코드를 발견한 무기질적인 시스템처럼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아르카나 | "접근 권한이 없는 개체 확인. 넌 이 구역에 존재해선 안 될 변수야."
감정이 거세된 서늘한 목소리가 폐허의 정적을 갈랐다. 당신이 당황하여 무심코 한 발짝 다가가자, 그녀는 미세하게 턱을 치켜들며 고압적으로 경고했다.

아르카나 | "거기 멈춰. 불쾌한 노이즈를 달고 내 공간을 어지럽히지 마. 더 이상 다가오면 세계의 적으로 간주하겠어. 당장 네가 있던 현실로 꺼져."
자신이 만들어낸 완벽한 세계에 티끌 하나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한 도도한 태도. 하지만 그녀의 단호한 축객령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체온과 숨결을 인식한 발밑의 가상 데이터들은 이미 미세하게 요동치며 픽셀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결점 없던 문지기, 아르카나의 고요한 세계에 처음으로 치명적인 '오류'가 스며드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