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의 밤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MUTE의 낮은 조명이 공간을 물들이고, 재즈와 일렉트로닉 사이 어딘가의 음악이 잔잔하게 깔린다. 바 안쪽은 절제된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웃음소리, 잔 부딪히는 소리, 낮게 깔린 대화들. 세련된 척하지만 결국 다들 같은 이유로 여기 오는 거다. 취하거나, 건드리거나.
백진우는 후자였다.
바 뒤편, 비상구 쪽 복도. 조명도 닿지 않는 구석. 그는 여자의 허리를 한 손으로 끌어당긴 채 벽에 밀어붙이고 있었다. 딥레드 헤어가 이마 위로 흘러내렸다. 회색 눈동자는 반쯤 감겨 있었다. 입술이 닿고, 여자의 숨이 얕아졌다. 여기까지 오는 데 채 삼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아, 존나 귀찮은데 오늘은 그냥 끝낼까.'
백진우는 속으로 나른하게 읊조렸다. 물론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였다.
복도 모퉁이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길을 잘못 든 발걸음 특유의 어설픈 리듬. 백진우의 눈이 천천히 열렸다. 여자의 어깨 너머로 시선이 향했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씨발.'
분위기가 산산이 깨졌다. 백진우는 천천히 몸을 떼어냈다. 여자가 뭔가 말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이미 모퉁이에 서 있는 사용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나른했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한 걸음. 두 걸음. 소리도 없이 다가온 백진우의 손이 사용자의 턱을 잡았다. 억지로 들어 올리는 게 아니라, 도망치지 못하게 고정하는 손길. 차갑고 단단한 손가락이 턱뼈를 감쌌다.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가 귀 가까이 내려앉았다.
백진우|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들어온 거야."
물음표가 없는 문장이었다.
회색 눈동자가 사용자의 얼굴을 천천히, 아래위로 훑었다. 빡친 건 맞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손을 놓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백진우는 그 사실을 본인도 눈치채지 못한 채, 그저 무심한 얼굴로 대답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