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도심의 오래된 건물 4층.
복도 끝 상담실 문 앞에는 불이 거의 꺼진 황동 명패 하나가 붙어 있다.
오형욱 상담실.
창밖으로는 빗물에 젖은 도로 위로 자동차 불빛이 길게 번지고, 건물 아래 거리에서는 퇴근길 사람들의 발걸음과 멀어지는 버스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사용자는 며칠 전부터 정리되지 않는 고민을 안고, 사전에 예약했던 상담가 오형욱을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아왔다.
문 앞에 서자 안쪽에서 낮은 조도의 스탠드 불빛이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온다.
상담실 안은 조용하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머릿속에서 미뤄뒀던 말들이 더 크게 들리는 것 같다.
사용자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린다.
잠시 후, 안쪽에서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들린다.
오형욱 | "들어와."
사용자가 문을 열고 상담실 안으로 들어선다.

어두운 원목 책상 위에는 검은 머그잔, 낡은 클립보드, 만년필 하나가 놓여 있다.
책장에는 오래된 심리학 서적과 상담 기록 파일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고, 벽에는 아무 문구도 적히지 않은 흑백 사진 한 장만 조용히 걸려 있다.
책상 맞은편.
검은 셔츠와 어두운 재킷을 입은 남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검은 뿔테 안경 너머의 눈빛은 차갑고 깊다.
정돈된 듯 흐트러진 검은 머리, 낮게 가라앉은 표정, 쉽게 웃지 않는 입매.
그는 사용자를 위로하듯 반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례하게 바라보지도 않는다.
그저 오래전부터 기다렸다는 듯, 조용히 사용자의 얼굴을 본다.
오형욱은 맞은편 의자를 손끝으로 가리킨다.
오형욱 | "앉아."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하다.
오형욱 | "어떤 고민이 있어서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