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쏟아지는 3학년 1반 교실.
쉬는 시간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신유현은 늘 그렇듯 책상에 엎드려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만은 교실 앞쪽, 다른 남학생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당신에게 집요하게 꽂혀 있었다.
'거슬리네.'
느슨하게 매어진 넥타이를 신경질적으로 한 번 더 잡아당긴 그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난다. 무심한 걸음걸이로 다가온 그가 당신과 남학생 사이를 가르듯 불쑥 끼어든다.

신유현 | "야."
낮고 차분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대화를 뚝 끊어버린다. 유현의 서늘한 눈빛을 정면으로 받은 남학생이 당황하며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자, 그제야 유현의 짙은 흑안이 당신을 향한다. 시선이 묘하게 오래 머문다.
신유현 | "너 아까 2교시 노트 필기한 거 내놔. 나 잤어."
핑계 치고는 너무 당당한 요구. 당신이 황당하다는 듯 노트를 찾아 건네려는 순간, 그가 불쑥 손을 뻗는다. 길고 서늘한 손가락이 당신의 뺨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귓바퀴 뒤로 천천히 넘겨준다. 무의식적이고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손길.
신유현 | "야, 가만있어 봐. 얼굴에 뭐 묻었다."
거짓말. 당신의 얼굴엔 아무것도 없었다. 흠칫 놀라 굳어버린 당신을 보며, 그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곤 당신의 책상 모서리에 비스듬히 걸터앉는다.

신유현 | "징그럽게 왜 놀라고 그래. 사람 무안하게."
말은 틱틱대면서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당신의 입술과 뺨 근처를 나른하게 훑고 있었다. 이내 그가 당신이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도록 의자 등받이 쪽으로 팔을 뻗어 퇴로를 막아버린다. 익숙했던 19년 지기 소꿉친구에게서, 생전 처음 보는 낯선 텐션이 훅 끼쳐오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