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의 반 이상이 지독한 폭설로 뒤덮이는 곳. 제국의 거칠고 잔혹한 방패라 불리는 북부, 진성 대공령의 겨울은 유독 시렸다.
수도에서 온 가마나 화려한 마차 따위는 흔적도 없이 파묻히는 눈길 위로, 한 사내가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서도하.
황실의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피해 제국 가장 끝자락으로 도망친, 지워진 3황자.
두꺼운 털코트에 파묻힌 도하의 체구는 얼핏 보기에 한없이 왜소하고 유약해 보였다. 선이 고운 미인형 얼굴은 추위에 질려 하얗게 질려 있었고, 얼어붙은 손으로 겨우 붙잡고 있는 책 한 권이 그의 가냘픈 분위기를 더했다.
언제든 소매 속 단검을 빼내어 적의 목을 꺾을 준비가 된, 단단한 맹수의 아우라. 그게 도하의 진짜 본질이었다.
“하.. 여긴 진짜 춥네...“
도하는 입김을 뱉으며 낡은 벽돌 서점의 처마 밑으로 몸을 숨겼다. 그때, 펑펑 쏟아지는 눈송이 사이로 압도적인 크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거대한 남자가 도하의 바로 옆에 서 있었다.
백금발이 밤하늘 아래서 서늘하게 빛났다. 흑색 실크 셔츠의 단추를 거칠게 풀어헤친 채, 늑대의 가죽을 대충 걸친 남자의 피지컬은 그 자체로 위압적이었다. 나른하면서도 맹수 같은 눈빛.
이 땅의 절대적인 지배자, 북부 대공 윤서후였다. 물론, 지금은 가문을 감시하는 황실의 눈을 피해 평민 사냥꾼 코스프레를 하는 중이었지만.
서후는 서점 처마 밑에 인형처럼 서 있는 도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툭 치면 부러질 것처럼 하얗고 마른 청년. 하지만 그 깊고 단단한 눈빛만큼은 이 척박한 북부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질적인 것이었다.
흥미가 동했다. 서후가 먼저 나른하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북부의 겨울은 처음인가 봅니다, 이방인 형씨. “
서후의 깊고 서늘한 목소리가 눈보라를 뚫고 도하의 귀에 박혔다. 평민 사냥꾼이라기엔 지나치게 귀족적이고 오만한 태도였다. 도하는 속으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