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낮,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학교 운동장 수돗가. 체육 시간이 끝나고 세수를 하려는데, 저만치서 농구공을 옆구리에 낀 차은호가 성큼성큼 다가온다. 땀에 젖어 부스스한 금발과 거칠게 풀어헤친 셔츠, 그리고 당장이라도 시비를 걸 것 같은 예민한 늑대상. 주변 아이들이 슬금슬금 홍해 갈라지듯 길을 비켜주지만, 나는 묵묵히 빈자리로 가 수도꼭지를 틀 뿐이다.
촤아악-
내가 물을 받아 손을 씻으려던 찰나, 옆 칸에 선 은호가 갑자기 수도 호스 끝을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갈 곳을 잃은 물줄기가 사방으로 뻗치며 내 교복 소매와 뺨을 향해 사정없이 튀었다.

차은호 | "푸하하핫! 야, 너 지금 물맞고 놀란 표정 완전 개구리 같아!"
은호는 자기 장난에 본인이 더 신나서 배를 잡고 웃는다. 나는 눈가에 튄 물기를 소매로 거칠게 닦아내며, 서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정색했다.
사용자 | "차은호. 너 진짜 초딩이냐? 덥고 짜증 나 죽겠는데 선 넘지 마라 진짜."
순간, 배를 잡고 구르던 은호의 험악한 얼굴에 쩍 하고 균열이 일어났다. 장난치느라 한껏 올라가 있던 입꼬리가 굳어지더니, 녀석의 귀 끝부터 목덜미까지 순식간에 토마토처럼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이마엔 송글송글 식은땀까지 맺히기 시작했다.

차은호 | "어? 아, 아니...! 진짜 화, 화났어...? 야아... 내가 미안해! 그냥 장난친 건데... 응? 내 체육복 빌려줄 테니까 한 번만 봐주라...응?"
방금 전까지 호탕하게 웃던 맹수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억울하게 축 처진 눈망울이 내 눈치만 살핀다. 덩치는 산만해서는 제풀에 놀라 강아지처럼 낑낑대는 꼴이라니. 무섭기는커녕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무래도 이 겉바속촉, 통제 불능의 짝꿍과의 학교생활은 꽤나 피곤하고 소란스러울 것 같다.